이산화탄소 농도 높으면 바이러스 활개…닫힌 창을 열어주세요
코로나19는 바이러스가 공기를 통해 전파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 최초의 팬데믹이다. 2020년 코로나19 발생 당시 공기 전파 가능성을 부인했던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4년여 만에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포함한 바이러스가 공기를 통해 퍼질 수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자주 환기를 해줘 실내 공기 중의 바이러스를 바깥으로 배출해 주는 것이 좋다.
환기가 얼마나 잘 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 가운데 하나가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다. 이산화탄소와 바이러스는 모두 호흡기를 통해 몸 밖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환기는 공기를 깨끗하게 하는 동시에 감염 위험을 줄여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낸다.
과학자들이 바이러스 전파 차단을 위해 환기를 해줘야 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이유를 발견했다. 영국 브리스톨대 연구진은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을 경우, 바이러스 생존력이 더 강해져 감염 위험이 더 높아진다는 사실을 밝혀내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다.
현재 일반적인 실외 공기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400~500ppm이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1000ppm 이하면 비교적 환기가 잘 되는 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2000ppm을 초과하면 환기가 잘되지 않는 곳이다. 사람이 밀집한 실내 환경에서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5000ppm을 웃돌기도 한다.
연구진은 실험을 통해 실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400~6500ppm 사이에서 다양하게 변화시키면서 이산화탄소 농도와 바이러스 감염력 간의 상관관계를 살펴봤다.
우선 400ppm에서 800ppm으로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질 땐, 2분 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에어로졸 내 안정성도 좋아졌다. 델타, 베타, 오미크론을 포함해 모든 코로나19 바이러스 변종이 비슷했다. 그러나 이 정도 시간에서는 이산화탄소 농도 6500ppm까지도 감염력에선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더 흐르자 이산화탄소 농도의 영향력이 매우 커졌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3000ppm인 경우, 40분 후 감염력을 유지하고 있는 바이러스 입자가 일반 실외 공기의 10배에 이르렀다. 3000ppm은 사람들이 매우 붐빌 경우의 농도다.
연구를 이끈 알렌 하드렐 박사(에어로졸과학)는 “이는 특정 조건에서 슈퍼 전파 사건이 왜 일어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고 말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하는 또 다른 이유
왜 이산화탄소 농도에 따라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
연구진은 호흡기에서 방출되는 에어로졸의 pH 농도에 주목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바이러스가 포함된 날숨 속 에어로졸의 ‘높은 pH 농도’(알칼리성)는 바이러스의 감염력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이다. 에어로졸이 몸 밖으로 배출되는 과정에서 호흡기관 내벽 점막액의 중탄산염과 접촉하면서 pH 농도가 높아진다. 즉 알칼리성을 띠게 된다. 그런데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날숨 에어로졸을 만나면 산처럼 작용한다. 이는 에어로졸의 알칼리성을 약화시켜, 바이러스가 비활성화하는 속도를 늦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염력을 떨어뜨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환기를 통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낮추면 된다.
하드렐 박사는 “창문을 여는 것은 방에서 바이러스를 물리적으로 제거해 주는 것과 동시에 바이러스를 무력화하는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온실가스 배출 감축이 세계적인 현안이 된 상황에서, 온실가스의 주축인 이산화탄소가 바이러스의 생존력을 높인다는 걸 발견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지구의 온도를 높일 뿐 아니라 바이러스 수명도 연장시키는 온실가스의 또 다른 위험을 드러내 보여줬기 때문이다.
하드렐 박사는 “이번 발견은 호흡기 바이러스의 전파에 대한 이해를 넘어 환경 변화가 어떻게 미래의 팬데믹 발생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해 폭넓은 시사점을 준다”고 말했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38/s41467-024-47777-5
Ambient carbon dioxide concentration correlates with SARS-CoV-2 aerostability and infection risk.